인공지능이 고도화되더라도 결국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는 일은 인간의 몫입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힘은 인공 지능과 우리를 구분하는 주요한 잣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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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질문은 '빈자리'에서 시작하지만, 채워야 할 공간의 성격에 따라 질문의 방식과 수준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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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학생들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 실험에서는 독해력 수준에 따라 학생을 상 수준과 하 수준으로 구분했습니다. 편의상 상 수준 학생은 s1, 하 수준은 s2로 지칭하겠습니다. 위쪽이 s1의 시선이고 아래쪽은 s2의 시선입니다. s1의 시선은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글의 3분단과 먹이사슬 그림에 시선을 두고 있군요. 그리고 다음과 같이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1, 2, 3차 소비자 중에서 3차가 제일 크나? 3차는 무조건 더 큰가? 생산자들이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더 궁금해요. 다른 소비자들처럼 다른 생물을 직접 먹어서 에너지를 얻는 게 아니라고 하니까요.”
s1은 비판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정보를 탐색할 계기를 암시하기도 했지요. 실험 테스트에서는 '2차 소비자는 1차 소비자에 비해 크기가 큰 생물'이라거나 '3차 소비자는 범고래와 같은 큰 바다생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상위 포식자가 더 크지요. 하지만 s1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상위 포식자는 무조건 더 큰가?'라며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생산자는 다른 생물을 먹지 않고 직접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점에 주목하여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했습니다. 이는 테스트 안에서 충분히 해소되지 못한 질문(lingering question)이기도 했지요. s1은 조금 더 의욕이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글을 더 찾아 읽어 보지도 모릅니다.
반면 s2는 선뜻 질문 거리를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지만 쉬사리 질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학생을 독려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궁금한 점이 있다면 말해 보라고요. 글 위를 한참 배회하던 s2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생 식물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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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그 내용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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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엘렌코드(Elenchus)'의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엘렌코스는 '논박'이라는 뜻인데 사실 이 개념은 문답식 대화의 방법론이라기보다 철학적 삶의 태도나 방식에 가깝습니다. 논리적으로 전제와 결론 사이의 모순을 밝히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지를 깨닫는 과정에서 느끼는 혼란스러움과 수줍음, 호기심 등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질문 생성에 관한 연구들 역시, 질문은 인지적 혼란과 당혹감에서 시작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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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것과 지금 알게 된 것 사이에 간극이 생길 때 비로소 질문할 거리가 생깁니다. 글자만 빤히 노려본다고 해서 질문이 나올 리 만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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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심리학 연구에서는 이를 '생각의 깊이라는 환상'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인간은 특정 주제에 대해 자신이 충분히 알고 있다고 믿는 편향을 지니게 된다는 겁니다. 일종의 착각이지요. '헛똑똑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많이 아는 듯 전체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정작 모르는 사람을 놀리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대화가 길어지면 실력이 결국 들통납니다. '이 사람이 아는 바는 여기까지구나' 하고 말이지요.
리터러시 연구자들은 학습자들이 주제와 관련해 배경 지식이 많을수록 텍스트를 더 잘 읽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실제로 아는 것이 많으면 그만큼 더 깊이 있게 읽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매하게 아는 지식은 오히려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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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나에게 유용하고 흥미로운 주제여야 질문합니다.
둘째, 새로운 자극이 질문해야 할 필요를 만듭니다.
셋째, 주의를 이곳저곳으로 옮겨야 질문할 거리가 생깁니다.
넷째, 애매하게 아는 상태가 가장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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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주의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t Bandura)는 인간이 스스로 어떤 과업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자기 효능감'이라 했습니다. 자기 효능감의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성취 경험'입니다. 한번 성공을 맛보면 그다음에도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 믿게 됩니다. 성공적으로 질문해 본 경험이 중요합니다. 물론 처음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시도해 보세요.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대화 상황을 주도하고 있음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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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연구자들은 그 과정을 단계로 구분하고 체계화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디지털 읽기 연구자인 루에(Jean-Francois Rouet)와 브릿(M. Anne Britt)이 제안한 MD-TRACE(Multiple Documents Task-Based Relevance Assessment and Content Extraction) 모델도 그중 하나지요. 이들은 독자가 다중 텍스트를 읽어 나가는 일을 일종의 문제 해결 과정에 빗대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독자는 자신의 내 외부에 있는 자원을 활용해 텍스트를 읽는데, 이때 과제와의 관련성을 기준으로 텍스트의 정보를 평가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활용하는 자원들은 독자의 배경지식이나 현재까지 구성한 의미, 이를 따로 기록해 둔 흔적들, 과제 상황 등을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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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지능에 묻고 답하는 질문 과정은 온라인 읽기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던 탐색, 평가, 종합의 과정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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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대상이 자연 현상이면 '과학'이,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면 '철학'이 세워집니다. '사과는 왜 나무에서 떨어지는가?'라는 물음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이 만들어졌습니다. 같은 사과를 보고도 칸트는 "사과가 빨갛게 '보인다'고 해서 정말 빨갛다고 할 수 있을까?'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인간의 이성이 어떻게 세상의 작동 구조를 인식하는지를 설명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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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질문을 할 때 세 단계를 거칩니다. 질문할 필요를 인식하고, 질문할 거리를 조율하고, 응답을 구하기 위해 표현하지요. 질문의 필요를 느끼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모른다는 인식, 즉 알아야 할 것이 더 남아 있음을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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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미래 사회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지식을 모으는 일보다, 그 지식을 어떻게 새로운 장면에서 활용하고 타인과 소통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집니다. 이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텍스트를 '부분'으로 인식하고, 여기에 다시 나의 배경지식이나 관점, 신념 등을 더해 또 다른 전체를 생성해 가는 '구성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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