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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독서 기록] IT 회사에 간 문과 여자, 염지원, 모로

by Renechoi 2022. 10. 29.
 
IT 회사에 간 문과 여자
뼛속까지 문과생은 어떻게 아마존 엔지니어까지 될 수 있었을까? 한비야와 반기문을 롤모델로 삼고 ‘가슴을 뛰게 하는 꿈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계시처럼 품고 살던 90년대생 문과생인 저자는, 문과생들에게 유난히 비좁은 취업문을 간신히 뚫고 외국계 IT 회사의 ‘전공 무관’ 부서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엔지니어들을 지원하는 부서에서 기술을 몰라 무시당했던 문과생은 기술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꿈을 품게 된다. 여자라서, 비전공자라서, 지금은 너무 늦은 것 같아서… 모두와 똑같은 의문을 품고 자신을 의심하던 90년대생 문과생의 IT 업계 분투기.
저자
염지원
출판
모로
출판일
2022.03.18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병이 되기도 하고, 내가 괴물처럼 느껴지게 하기도 한다. 

- 6

 

 

우리가 관장할 수 있는 이 작은 영역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 잘해내고 싶다는 성실하고도 유약한 열망, 이게 쌓여서 결국은 멀리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 

- 7 

 

바라던 대로 정치외교학과에 진입했지만 너무 많은 동기가 국제기구에 가고 싶어 해서 그 일이 더는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 18 

 

그러니 너무 어렸을 때부터 가슴 뛰는 일을 찾으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을 즐기라거나 놀라고도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나처럼 우유부단하고 말 잘 듣는 인간은 그 말들 때문에 더 좁은 원에만 갇혀버릴 수도 있다.

- 20 

 

기술적 전문성을 쌓으려 퇴근 후에 고군분투하고 신기술에 눈이 반짝이다가도, 회사라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주는 좌절에 빠지면 "월급이나 받자!"고 외치는 무한루프에 빠져 산다. 정말 직장인 1이 돼버렸다. 

-22

 

남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게 아니라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 열망은 걷잡을 수 없이 새어나왔다. 

- 26

 

 

장황하게 적었지만 결국 비법은 하나밖에 없다. 몰입하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몰입하기까지 잔머리 굴리는 데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는 것, 일단 해보는 것.

- 50

 

 

긴 시간 동안 읽는 전공서, 긴 글로 풀어내야 하는 시험 등은 문과생들이 대학생활 내내 터득하게 되는 소중한 기술이다. 이 능력은 회사에 있는 그 누구도 훈련시켜줄 수 없다.

- 53

 

 

일단 시작하는 힘

- 58

 

 

정말 일단 무턱대고 뭐든 해봐야 한다. 아무리 봐도 내 능력으로 해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업무를 해보겠냐고 물어보면 일단 '오케이' 하고 가봐야 한다.

- 59 

 

 

이 세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다각도로 생각해본 문과생들이 들어와, 기술이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많아져야 한다. 

- 64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인공지능, 모두의 생을 이롭게만 하는 IoT 기술 같은 것들을 만들려면 사회의 다양한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문과 여자들은 이미 충분히 갈고닦아온 능력이다. 

- 68 

 

 

회사에서는 상처받을 일이 정말 많았다. 사람들의 말 한마디, 찰나의 표정으로 나는 아주 쉽게 너덜너덜해졌다. 유치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내 안에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 수 없는 우울함과 슬픔과 외로움이 쌓여갔다.

- 76 

 

 

사실 대학생 때까지는 뭐랄까, 회사원이 되는 건 꿈일 수 없다는 세상의 메시지를 온몸으로 받아왔던 것 같다. 회사원을 생각하면 소설 <모모> 속 회색 인간이 떠올랐다. 대학교 졸업식 때도 회사원이 아닌 '대단한' 사람들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역시 회사원이 되는 것은 시시한 일처럼 느껴졌다.

- 80 

 

 

정말 고작 이런 게 전부일 리 없다는 생각이 밤마다 나를 습격하기도 했ㄷ.

- 80 

 

 

출처를 알 수 없는 공허함에 사로잡혀 있다면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자신의 일을 하나하나 돌아봐야 한다. 일의 의미, 그 의미를 담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정의해봐야 알다가도 모를 공허함과 싸울 수 있다.

- 83 

 

 

여전히 나를 흔드는 말들을 듣는다. 그때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다시 한번 내 생각을 다잡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려 한다. 그래야 '이게 진짜 다라고?'라는 의문이 드는 생활 속에서 나만의 세계를 가꿀 수 있다. 

- 87

 

 

나를 깎아내리려는 것 같은 이들 앞에서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해 바쁘게 지냈다.

- 109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회사든 누구든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다시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싶었는데, 또 이런 따뜻한 순간들을 지나게 한다.

- 116 

 

 

어떤 사람이 여자로서 소환되지 않아야 한다

- 143

 

 

다른 하나는 그들이 남성중심 사회에 '과적응'해버렸다는 것이다.

- 153

 

 

너는 뭐 하고 싶냐는 말에 "일단 지금 하는 일을 잘하고 싶어"라고 답하는 게 어쩐지 멋이 없어 괜히 대답을 얼버무리게 된다.

- 167 

 

 

이런 일들을 겪다 보면 뭔가 열심히 해내며 사는 것이 참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개 내 에너지를 쏟아부어 전력투구하지만 종종 그에 합당한 결과를 손에 쥐지 못할 때도 있고, 그 노력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쉽게 폄하될 때도 있다. 열심히 사는 성실한 사람일수록 부서지기 쉽다. 강한 것은 부러지고 약한 것은 부서지는데, 성실한 사람은 약해서 부서진다.

- 168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는 있지만 그간 지나온 시간은 단 1분도 허투루 보낸 게 아니었다고, 시간을 낭비한 게 아니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그 순간은 어떤 것보다도 확실한 위로가 된다.

- 169 

 

 

회사에서는 누구나 자신만의 실패와 사연을 안고 살아가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쌓여간다.

- 178 

 

 

모든 이의 기본값이 '조금만 건드려도 기분이 안 좋아질 수 있는 상태'라는 점에서 회사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에 훨씬 더 취약해지는 공간이다.

- 178 

 

 

나는 별수 없는 야망가다. 쿨하고 칠하고 싶지만 자꾸 야망이 새어나온다.

- 186 

 

 

기절할 수밖에 없는 때가 돼서야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야망이라는 놈을 들여다본다. 최고가 되고 어쩌고 다 좋지만 사실 그 뿌리에는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물론 돈, 명예, 권력도 있다. 그렇지만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건 존재감인 것 같다. 

- 187 

 

어딘지 모르게 짠한 이 마음을 발견하고 나면 그제야 조금 진정이 된다. 이렇게 죽기 살기로 하지는 말자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또다시 일어나서 달릴 힘이 생긴다.

- 187 

 

 

하지만 완전히 녹다운이 돼서야 '충전해야지'하는 것보다는 꾸준히 건강하게 달리는 게 낫다. 내가 야망 있는 사람이란 걸 인정하게 (혹은 할 수밖에 없게) 된 뒤로는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야심을 건강한 자원으로 쓰는 것이다. 

- 187 

 

 

야망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뜯어보면 사실은 이렇게 소박하고 일상적인 열망의 집합에 불과하다.

- 191 

 

 

일적으로든 아니든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내가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것을 느낄 때다.

- 192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성장과 고통은 뗄 수 없다며 스스로를 착취하는 나 자신과 동료들을 보게 된다. 

- 193 

 

 

성장을 위한 마인드셋이 자학적이라고 느껴지지만, 성장의 순간을 지날 때의 짜릿함은 우리를 멈출 수 없게 만든다.

- 194 

 

"이 긍정적 사고의 핵심에는 불안이 놓여 있다. ...... 불쾌한 가능성과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고 차단하려는 쉼 없는 노력, 곧 고의적인 자기기만이 필요하다는 뜻"(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이라는 부분이었다.

- 195 

 

 

게다가 나는 내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민감하다. 시간만큼 한정적이고 귀하면서도 온전히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자원이 없어서다.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 196 

 

 

'무능'에 습격당하자 조급해졌다. 이렇게 살아서 되겠어? 사실은 네가 원하는 걸 이뤄낼 능력이 애초에 없었던 거 아냐? 지금 친구들이랑 놀 시간이 있어? 미드 볼 시간이 있어? 그 시간에 공부해야 되는 거 아냐? 사실은 네가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랑 별반 다를 거 없는 거 아냐? 어쩌면 이 회사가 너한테 가장 어울리는 곳일지도 몰라. 나는 내 안에 나를 가두고 흠씬 팼다.

- 197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는 말은 오래가지도 않고 위로가 되지도 않았지만, 작은 일을 꾸준히 하는 건 꽤 도움이 됐다. 일주일에 두 번 수영 가기, 못해도 하루에 10분은 고양이랑 놀아주기, 공부하기 싫은 날은 기술 블로그 한 개 읽기. 작고 별거 아닌 일들이 나를 구원했다.

- 199 

 

 

내가 가게 될 팀의 팀원들에게는 내년에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냐고, 다른 팀 사람에게는 내가 지금 가는 팀이 어떻게 일하는지,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등을 물었다. 좋은 질문을 하는 것, 대화가 끊기지 않게 이어가는 것 등이 중요한 자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던진 질문만으로도 누군가는 전문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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