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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결국, 세상은 만드는 사람들의 것

by Renechoi 2025. 9. 7.

1. 게임의 룰이 달라진다

요즘 머릿속에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는 두 단어가 있다. 바로 '프로덕트 엔지니어(Product Engineer)'와 'AI-Native' 이다. 이 단어들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넘어, 개발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일하는 방식, 그리고 추구하는 가치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좋은 개발자'의 기준은 명확해 보였다. 처음에는 TDD, 클린 코드, 객체지향 같은 '장인 정신'이 화두였다. 코드 한 줄의 우아함과 설계의 견고함에 집중했다. 그 후 패러다임은 '규모'로 넘어가는 듯 했다. MSA, 분산 시스템, 그리고 대용량 트래픽을 안정적으로 감당하는 능력이 개발자의 핵심 역량으로 여겨졌다.

 

언제부턴가 이 견고해 보였던 기준에 미묘한 균열이 느껴지는 듯하다. 거대 IT 기업들의 채용 공고에서부터 그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기술적 숙련도를 나열하던 공간에 '사용자 문제 해결', '비즈니스 임팩트' 같은 단어들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채용공고를 보자.

 

 

재밌게도 이건 이름 모를 스타트업의 공고가 아니다. 순서대로 네이버, 카카오페이, 토스증권이다. 네이버와 카카오페이는 대놓고 'AI'를 강조하고 있다. 테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알려진 토스증권은 기술 나열보다 '사용자 관점'을 강조하고 있다. 변화에 비교적 느린 대기업들, 네임드 기업들마저 움직이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가 아닐까?

 

스타트업 씬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이미 새로운 패러다임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다.

한 스타트업은 PO(제품 책임자)를 뽑으며 이렇게 말한다.
"XX Product가 10배 성장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요."


또 다른 AI 스타트업은 엔지니어의 문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엔지니어 1명이 아주 큰 권한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제품을 만들고 성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인당 100만원 이상의 AI 툴을 사용해 개인의 생산성을 10배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다"

 

오늘날 개발 씬의 현실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어제의 정답은 'How', 즉 어떻게든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늘의 정답은 'Why'와 'What'에서 출발한다. 왜 이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Why), 그래서 사용자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What)를 정의하는 능력. 그리고 그 답을 AI와 함께 가장 빠르게 시장에 증명해내는 것.

 

'프로덕트 엔지니어'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강력한 신호탄이다.


2. 새로운 시대의 문법: 프로덕트 엔지니어와 AI-Native

앞서 본 채용 공고들의 변화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개발자를 평가하고, 개발자가 일하는 방식의 '문법'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덕트 엔지니어: '어떻게'가 아닌 '왜'를 묻는 사람

 

'이 기능을 기술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만드는 법'을 묻던 시대가 저물고, '이 기능이 왜 필요한지, 사용자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묻는 시대가 오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프로덕트 엔지니어'란 바로 이 질문에 답하는 사람, 기술의 울타리를 넘어 제품의 성공까지 책임지는 존재다.

 

개발자들 씬에서 '기술은 도구일뿐'이라고 워딩은 이제 흔하다. 그런데 막상 까보면 정작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 '도구'라는 울타리 뒤에 스스로를 가둬왔나 싶다. "기획의 논리가 부족해서", "디자인이 완벽하지 않아서"라며 선을 긋고, "기술적으로는 완벽합니다"라는 방패 뒤에 숨어 제품의 실패에는 침묵하는 모순. 바로 그 안락한 경계를 부수는 것이 프로덕트 엔지니어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프로덕트 엔지니어란, 기술의 완성도가 아니라 제품의 성공에 자신의 정체성을 거는 사람이다.

 

AI-Native: AI를 동료로 삼는 사고방식의 전환

 

단연 이 변화의 중심에는 AI가 있다. 'AI-Native'는 단순히 코딩 보조 도구를 쓰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획의 시작부터 설계, 개발, 배포, 심지어 장애 대응까지 모든 사이클의 첫 번째 동료로 AI를 상정하는, 사고방식의 완전한 전환을 의미한다.

 

새로운 역할: 지휘자로서의 개발자

 

인간은 더 이상 모든 것을 알거나 할 필요가 없다. 대신, 명확한 '목적'을 설정하고 AI라는 막강한 팀원을 지휘하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이때 설계라는 것은 단순히 견고한 시스템 구조를 짜는 기술적인 설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개발자의 설계는 사용자가 겪게 될 '경험'의 영역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우리가 '왜' 이 제품을 만드는지에 대한 답, 즉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자체를 날카롭게 설계해야 한다. 그다음엔 사용자가 어떤 여정을 통해 우리 제품의 가치를 느끼게 할 것인지, 그 경험의 흐름을 설계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가설이 맞는지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최소 기능(MVP)과 성공의 척도가 될 지표까지도 이 설계의 범주에 포함된다. 즉, 코드를 짜기 전 단계에서 '어떤 코드를 짜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설계'인 셈이다.

 

 



이 두 가지 화두는 하나의 명확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코드를 잘 짜는 것을 넘어, '될 만한 제품'을 '빠르게' 만들어 시장의 반응을 얻어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AI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해 인간은 오직 창의적인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개발자가 추구해야 할 목표다.



3. asyncsite: 성장을 넘어 성취를 향한 실험

실험실의 탄생: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가만히 있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주변에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실천해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철학을 증명해 낼 우리만의 놀이터,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빚어내는 실험실이 필요했다. 그래서 asyncsite라는 팀을 꾸렸다.

 

 

핵심 원칙 1: 성장을 넘어 '성취'의 서사를 만든다

 

asyncsite는 '고독한 개발자들의 성장 문제를 해결한다'는 미션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저희는 일찌감치 '성장'이라는 단어의 함정을 경계했다. 기술 블로그를 읽고, 강의를 듣고, 책으로 공부하는 것.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진짜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미쳐있는 것은 성장을 넘어선 '성취'이다. 내가 만든 코드가 실제 트래픽을 견디고,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며, 때로는 첫 유료 결제까지 이끌어내는 살아있는 경험. 단순히 '기술을 써봤다'는 성장 일지를 넘어, 시장에서 그 가치를 증명해내는 '성취의 서사'를 만드는 것. 이 희열이야말로 잠을 줄여가며 시간과 노력을 갈아넣는 연료이다.

 

핵심 원칙 2: AI-Native 로켓에 올라타 아이디어를 폭발시킨다

 

그래서 스터디 플랫폼이라는 시작점을 넘어, 10개가 넘는 프로덕트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어떻게 하면 이 아이디어들을 세상에 증명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물론, 모두가 직장인이라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AI-Native'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리고 오히려 바로 그 덕분에 거대한 패러다임 쉬프트 전환의 물결에 빠르게 올라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거 재밌겠다!"라는 아이디어가 나오면, 우리는 긴 시간과 리소스를 걱정하며 주저앉기보다, 'AI와 함께라면 어떻게든 길이 있다'고 믿고 부딪쳐보기로 했다. 최근 참여했던 AWS Q 해커톤 역시, 우리의 이런 믿음과 방식을 실전에서 검증해 보기 위한 담대한 실험의 일부였다.

 

 

AI라는 동료와 함께라면, 부족한 시간의 한계를 넘어 며칠 만에도 시장의 가설을 검증할 MVP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느슨하지만 끈끈하게' 라는 모토로 시작해서, 그렇게 매일 아이디어를 폭발시키고, 어떻게 하면 AI를 더 잘 써서 세상을 놀라게 할 무언가를 만들어낼지에 미쳐있는 사람들이다.


4. 결국, 세상은 만드는 사람들의 것

결국 'localhost를 벗어나야 진짜 개발'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코드도,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시장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박물관의 박제와 같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것이다. 진짜 성장은 바로 이 과정, 즉 나의 논리가 시장의 현실과 부딪치고 깨지며 단단해지는 '성취'의 경험 속에 있다는 믿음이다. 코드를 넘어 제품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넘어 가치를 증명하는 것. 그것이 AI 시대의 프로덕트 엔지니어가 걸어야 할 길이다.

 

AI는 우리에게 더 좋은 코드를 짜는 능력이 아니라, 더 과감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기술의 장벽이 낮아진 지금,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어쩌면 아주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세상은 만드는 사람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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