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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제가 만든 AI가 처참히 패배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짜릿한 순간은 없었습니다)

by Renechoi 2025. 8. 1.

백엔드 개발자로서 제 세계는 주로 잘 설계된 API, 데이터 처리 프로세스, 그리고 서버의 로그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최근 친구들과 떠난 1박 2일 여행에서, 이 세계를 완전히 뒤흔드는 경험을 했습니다. 딱 3시간만 투자해 열었던 작은 코드 배틀이 제게 던진 커다란 질문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해커톤의 기획자로서, 참가자들이 상대할 ‘고급’ 난이도의 내장 AI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이 AI가 너무 어려워서 참가자들이 모두 패배하면 어쩌나 하는 기우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제 '정답' 앞에서 좌절하는 그림을 내심 바랐던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바로 그 우려가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이 저마다의 기발한 전략으로 제가 만든 알고리즘의 허점을 파고들어 승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최종 우승을 차지한 건님의 전략은 모두를 감탄하게 했습니다. 대부분이 초반부터 정답 일부를 맞히는 데 집중할 때, 건님의 AI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초반 몇 턴은 일부러 정답이 0개인 단어 조합을 던져, 어떤 단어가 확실한 ‘오답’인지를 먼저 걸러내는 대담한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정보의 우위를 점하고, 후반부에 압도적인 격차로 역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협업: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 목소리들

 

물론 이 모든 경험은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건님의 놀라운 전략 외에도, 해커톤 내내 이런 생생한 목소리들이 오갔습니다.

 

"각자 만든 AI를 종합해 더 강력한 알고리즘을 생성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다."

"생각보다 AI는 멍청하다. 사용자가 똑똑하면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정답을 맞히는 건 기술이고, 이기는 건 전략이다."

 

이런 멋진 경험을 함께 만들어준 일일맨 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합니다.

 

다시 또 AI 시대, 개발자의 쓸모란?

 

이번 해커톤은 AI 시대의 개발이 어떤 모습일지 엿보는 창과 같았습니다. 단순 반복적인 코드 생성을 AI에게 맡기니, 저희는 온전히 ‘전략’과 ‘경험 설계’라는 더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역할 변화가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기술의 발전이 우리를 또 어떤 새로운 역할로 이끌지, 어쩌면 지금의 ‘전략가’라는 역할마저 언젠가 대체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 기술 덕분에 우리가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며 일할 수 있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결론: 코드 너머, ‘경험’의 주인이 된다는 것

 

이번 경험을 통해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제가 가져야 할 진짜 ‘오너십’은 코드베이스가 아니라, 그 코드가 만들어내는 사용자의 경험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프로덕트의 완성은 기능의 집합이 아니라, 사용자가 겪는 즐거움과 몰입의 순간이니까요.

 

혹시 저처럼 서버와 로직의 세계에 익숙한 개발자라면, 가끔은 이렇게 엔드 유저와 직접 닿아있는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만드는 기술의 ‘의미’를 발견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이 경험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코드와 때로는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업무에 새로운 ‘이유’와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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