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 대해서
슬랙 대화 중 “대기업 경험은 어떠세요? 성장하는 스타트업 vs 안정적인 대기업?”이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선뜻 답을 내지 못했지만, 아침 출근길 찬 바람을 맞으며 걷는 중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대기업은 보수와 닮아 있고, 스타트업은 진보와 닮아 있다는 가벼운 단상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노동자로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권리들,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더 큰 가치에 대한 사유로 점차 확장되었다. 가장 밑에 민주주의라는 가장 큰 틀이 있었다. 최근 2주간 이어진 윤석열 내란 사태는, 당연하게 여겼던 민주주의가 얼마나 당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일지 적나라하게 상기시키는 사건이었다.
국민으로서, 그리고 역사적 증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적 무관심이 어떤 멸망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우리가 너무나 쉽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민주주의는 사실, 끊임없는 관심과 행동을 통해서만 유지되는 값진 성취라는 점을 절감했다. 이 사건은 기본권과 인간 존엄이라는 원칙이 정치, 사회, 기업 어디에서나 반드시 지켜져야 함을 다시금 일깨워준 계기였다.
이 글은 대기업과 스타트업,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에서 출발해 그간 당연하게 생각했던 권리와 민주주의, 그리고 최근 사건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는 사유의 여정을 정리한 기록이다. 🍃
보수 == 대기업?
보수 뜻
보수란 무엇일까? 보수(保守)라는 단어는 ‘지킬 보(保)’와 ‘지킬 수(守)’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기존의 것을 보호하고 유지하며, 변화보다는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철학적으로 보수는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체계를 유지하고 보호하려는 사상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공자는 대표적인 보수적 사상가다. 유교 사상에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강조하며 전통적 도덕규범과 사회 질서를 중시했다. 그는 개인과 사회의 안정과 조화를 추구하며 가족 중심의 윤리와 계층적 사회 구조를 중요하게 여겼다.
한국사에서 보수적 가치를 주창한 인물로는 조선 후기의 흥선대원군을 들 수 있겠다. 그는 외세의 침입을 막고 전통적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쇄국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왕권을 지키고 조선을 보호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시대적 변화를 거부하면서 외교적 고립과 변화에 대한 적응 실패로 이어졌다.
대기업과 보수의 유사성
대기업은 보수적 가치와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대기업은 이미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BM)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아, 시장 내 확고한 입지를 통해 예측 가능한 수익을 창출하려 한다. 이러한 안정성은 고객층의 신뢰와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고 다각화된 사업 구조로 불황에도 견딜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형성한다.
대기업은 조직 구조와 시스템이 명확하게 확립되어 있으며, 이를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 의사 결정은 대체로 수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책임과 권한이 명확하게 분배된다. 회사 내 규칙과 절차가 철저히 관리되며, 인력 관리, 보고 체계, 평가 시스템 등이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변화에 대해서도 대기업은 신중하다. 위험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며, 검증된 기술과 운영 방식을 선호한다. 새로운 소프트웨어나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여러 단계의 프로세스를 거쳐야 하고, 상부 관리자에게 보고하는 복잡한 절차를 따른다.
소프트웨어 개발 관점에서의 접근은 어떨까?
대기업의 소프트웨어 개발은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기술 스택과 도구 선택에 있어 검증된 기술만 사용하며, 배포와 운영 과정에서도 기존 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방향을 중시한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보다는, 기존 시스템의 유지와 업그레이드를 통해 운영의 연속성을 보장하려 한다.
예를 들어, 신규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프로젝트 제안서를 작성하고 이를 단계별로 상부 관리자에게 제출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이는 체계적이면서도 변화에 대한 신중한 접근 방식을 잘 보여준다.
대기업의 보수적 운영 방식은 조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예측 가능한 성과를 내는 데 유리하다. 그러나 이는 변화와 혁신을 지연시키고, 유연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대기업은 보수적 가치와 경영 철학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진보 == 스타트업?
진보 뜻
이제 진보에 대해 생각해 보자. 진보란 무엇일까?
진보(進步)는 ‘나아갈 진(進)’과 ‘걸음 보(步)’로 이루어진 단어다. 이는 기존 상태를 넘어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와 혁신을 수용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며, 사회적·문화적 발전을 추구하는 태도가 진보의 핵심이다.
진보적 사상의 대표 주자로 장자크 루소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루소는 사회 계약론을 통해 기존의 부패한 권력 구조와 제도를 비판하고, 혁신적 변화를 통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의 철학은 기존의 질서를 깨고 새로운 사회적 구조를 창조하려는 진보적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한국사에서는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이 진보적 지도자의 대표적 사례다. 그는 일제강점기 동안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변화와 개혁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외세의 억압에 맞서며 민주적 가치를 기반으로 새로운 국가 건설을 꿈꾼 그의 삶은 진보적 리더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한국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리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나 역사책을 접하면서, 그의 철학과 사상, 그리고 조선을 설계했던 과정에 감명을 받았었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주역인 정도전은 고려 말기의 무능하고 부패한 귀족 중심 정치를 깊이 비판하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혁신적 국가 설계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혁신적 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 질서를 꿈꿨으며, 고려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대담한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그의 신념과 행동은 단순히 당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를 향한 비전을 품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깊은 존경을 느낀다. 정도전의 정치 철학은 단순히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고 공정한 사회 질서를 세우려는 목표에서 출발했다. 그의 사상과 실천은 당시 권력자들에게 위협이 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개혁적 리더십과 혁신적 사고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정도전은 시대를 초월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진보적 가치와 혁신을 실현한 역사적 리더의 모범이라 생각한다.
스타트업과 진보의 유사성
스타트업은 진보적 사고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스타트업의 특징은 시장 판도를 뒤흔들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하는 데 있다. 대기업이 안정과 유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스타트업은 변화와 성장을 목표로 한다.
스타트업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성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우선시한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양자 컴퓨팅 등 첨단 기술 분야는 대부분 스타트업의 주 무대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있어서도 스타트업은 진보적 특성을 공유한다. 스타트업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는 유연성과 신속성이다. 기술 스택과 개발 도구의 선택에 있어 주저하지 않고 최신 기술을 도입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발전한다.
스타트업은 보통 짧은 개발 주기를 통해 최소 기능 제품(MVP)을 빠르게 출시하고, 사용자 피드백을 기반으로 신속하게 개선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방식은 변화와 혁신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 운영 철학을 보여준다.
스타트업은 위험을 감수하고 실패에서 배우며, 끊임없이 성장과 변화를 추구하는 점에서 진보적 가치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는 기존 질서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진보의 철학적 의미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 경계의 허물어짐
대기업은 곧 보수이고, 스타트업은 곧 진보일까? 이분법적 사고는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세상은 흑과 백처럼 나뉘지 않으며,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각각 보수와 진보의 상징처럼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비유하자면, 한국의 정치적 지역 구도를 떠올려 보자. 대구와 부산은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빨간색’으로, 전라도와 광주는 ‘파란색’인 진보당의 지지 기반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지역 내부를 들여다보면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경계도 점점 흐려지고 있다. 기업 문화도 마찬가지다.
1. 대기업의 진보적 변화 사례: 보수를 넘어서다 🚀
대기업이 반드시 보수적이라는 고정 관념은 변화하고 있다. 변화하는 시장과 글로벌 경쟁 속에서 대기업도 기존의 안정적 운영 방식을 넘어 혁신을 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 유연 근무제와 수평적 조직 문화 도입:
대기업들은 기존의 수직적 관리 체계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넥슨에서는 복장 자율화, 유연 근무제, 자율 휴가 제도, 팀원들 간 ‘님’ 호칭 사용 등 수평적 문화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 혁신적 업무 운영 사례:
구글은 직원들이 업무 시간의 20%를 창의적 개인 프로젝트에 투자하도록 권장한다. 이로 인해 Gmail, Google News 등 혁신적 제품이 탄생했다. 기존 대기업의 수직적 구조와는 거리가 먼 접근 방식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대기업이 단순히 보수적 시스템에만 안주하지 않고, 변화와 혁신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비롯된다. 대기업 내부에서도 스타트업의 특징으로 여겨지던 유연성과 수평적 문화를 점진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스타트업의 보수적 운영 사례: 진보 속의 보수 🏃
반대로 스타트업도 무조건 변화와 혁신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사업이 성장하고 조직이 커질수록 안정적 운영과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자유롭고 자율적인 문화를 기반으로 시작하더라도,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거나 특정 규모를 넘어서게 되면 체계적인 프로세스와 표준화를 도입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에어비앤비가 대표적인 예다. 초창기에는 자유롭고 혁신적인 스타트업 문화를 가졌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면서 법적 컴플라이언스 준수와 운영 관리 표준화를 수립했다. 이는 기존의 보수적 접근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조직을 안정화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변화와 혁신뿐만 아니라 체계와 질서를 동시에 추구해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3. 하이브리드 접근법의 중요성: 혼합과 진화 🌐
결론적으로 대기업과 스타트업,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구분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현대 기업들은 각자의 상황과 목표에 따라 양쪽의 특징을 적절히 혼합하는 하이브리드 접근법을 채택하고 있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의 유연성과 혁신성을 도입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려 하고, 스타트업은 안정적인 운영과 리스크 관리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삼는다.
즉, 시장의 요구와 경쟁 환경에 맞게 유연하게 변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성공의 핵심이다.
- 대기업은 진보적 혁신을 수용: 변화하는 시장 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기업은 스타트업의 유연성과 창의성을 점점 더 흡수하고 있다.
- 스타트업은 보수적 운영을 채택: 반대로, 스타트업은 규모가 커지고 시장에서의 책임이 증가함에 따라 안정성을 위한 보수적 운영 방식을 도입한다.
이러한 변화는 조직의 경쟁력이 단순히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가치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경계는 흐려지고 있으며,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 🌱
일하고 싶은 회사란 무엇인가?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대기업? 혹은 스타트업?"이라는 양자택일의 질문에는 더 근본적인 물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일하고 싶은 회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리고 이 질문의 답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대립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 권리가 보장되는 노동 환경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회사 규모나 운영 철학을 넘어, 노동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가치가 충족되는 회사를 상상해 보아야 한다.
유엔 인권 선언과 국제 노동 기준에서 강조하는 기본적 권리들은 다음과 같다.
- 적정한 임금 💵
- 안전한 근로 환경 🏢
- 휴식과 휴가 ⛱️
- 적절한 근로 시간 ⏰
- 차별 없는 고용과 공정한 대우 🤝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기준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따져보자.
1. 공정하고 적절한 보상 💰
노동자의 가장 기본적 요구는 공정한 보상이다. 이는 단순히 월급 액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성과 기반의 공정한 연봉, 투명한 평가 기준, 그리고 승진과 보상에 있어서 차별 없는 기회가 기본이다.
현실을 돌아보면, 신입 개발자의 최저 연봉으로 여전히 2,000만 원 대를 책정하고 있는 회사들이 있다. 10년 전 물가로 연봉을 책정하고 있는 수준인데, 최저임금으로 계산한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보다도 적은 수준이다. 개발자로서 고도의 전문성과 책임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시장의 평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상 체계는 명백히 개선되어야 한다.
2. 안전하고 쾌적한 근로 환경 🏢
근로 환경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업무 지원 체계와 근무 문화를 포함한다. 회사는 업무 장비 지원, 개발자 친화적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제공, 사무 공간의 쾌적성 보장 등을 통해 직원을 지원해야 한다.
예를 들어, IntelliJ Ultimate 라이선스도 지원해주지 않는 회사들이 있다. 가장 기초적인 도구조차 손에 쥐어주지 않고 개발을 시키면서 뭘 바라는 것일까? 또한, 재택근무, 유연 근무제, 식사 지원, 야근 택시비 지원 등은 현대적인 근로 환경의 기본 요소로 자리 잡아야 한다.
3. 일과 삶의 균형 ⚖️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은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가치다. 개발자 직군은 문제 해결의 창의성과 지속 가능한 생산성을 요구받는다.
고정 출퇴근 시간은 모든 산업에 적합하지 않다. 특히 개발 업무에서는 새벽 배포가 필요하거나 갑작스러운 장애 대응이 요구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개발 업무 특성상, 유연 근무제와 자율 출퇴근이 필수다. 이를 통해 개발자는 성과 중심의 결과 지향적 근무 문화 속에서 일할 수 있다.
4. 성장을 지원하는 기업 문화 📚
개발자는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하는 직업이다. 회사는 이러한 개인의 성장이 곧 회사의 성과로 연결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교육비 지원, 기술 세미나 참가 지원, 내부 스터디 그룹 운영, 사내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과 기술 역량 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개발자 개인의 커리어 성장에도 기여한다.
5. 차별 없는 공정한 기회와 존중 🌈
수평적이고 투명한 기업 문화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가치다. 수직적인 구조와 불투명한 평가 시스템은 구시대적 관행으로 남아야 한다.
능력과 성과에 기반한 공정한 평가 시스템은 필수적이다. 라인 잘 서는 사람이 승진하고, 인맥이 있는 사람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구조는 개발자의 창의성을 억제하고 회사의 장기적 성장을 방해한다. 실력 중심의 공정한 인사 관리는 모두가 동등한 출발선에서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든다.
결론: 보편적 기준에서 시작하는 좋은 회사
결론적으로 일하고 싶은 회사란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간에 진정한 "좋은 회사"란 단순히 보수적 안정성이나 진보적 혁신성을 표방하는 데 있지 않다. 노동자로서 기본권을 존중하고, 개인의 성장을 지원하며, 업무와 삶의 균형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회사야말로 일하고 싶은 회사가 아닐까.
당연하지 않던 것들
위에서 손꼽아본 노동 가치들은 오늘날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치들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요구하는 이러한 권리들이 과거에는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불과 20년만 돌이켜 생각해보자. 주 6일 근무가 당연한 시절이 있었다. 토요일에 학교를 가고 12시에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가 해주는 짜파게티를 끓여 먹는 게 일상인 날들이 있었다.
주 5일 근무제, 8시간 노동제, 야근 수당, 차별 없는 고용과 같은 권리는 수많은 사회적 요구와 투쟁을 통해 쟁취된 결과다. 초기 산업 혁명 당시 하루 14~16시간의 노동, 열악한 작업 환경, 아동 노동 착취 등은 노동자들이 처했던 참혹한 현실이었다. 이런 상황을 바꾼 것은 바로 끊임없는 사회적 요구와 투쟁 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태일 열사의 희생이 없었다면, 한국의 노동 기준은 더딘 속도로 변화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외침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근로기준법의 초석이 되었다.
문제는 이처럼 상향 평준화된 권리들조차도 여전히 도전받고 있으며, 현실 속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기본적인 권리가 충족되면 "좋은 회사"라고 느끼는 현실에 익숙해져 있지만, 이 권리들이 어떻게 얻어졌는지,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더 큰 틀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다시 상기해 본다.
그래서, 다 잃어버릴 뻔했다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계엄령 사태는 민주주의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 사건이었다.
윤석열 내란 수괴가 헌법을 유린하며 계엄령을 선포한 그날 밤, 우리는 민주주의란 얼마나 아슬아슬한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가까운 미래에 무너질 수 있었는지를 생생히 목격했다. 2시간 여만에 가까스로 계엄 해제가 이루어진 것은 마치 칼날 위에서 균형을 잡는 듯한 일이었다. 만약 그 칼날에서 단 한 번이라도 중심을 잃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잃었을까?
너무 흔한 클리셰지만, 이 문장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하지만 만약에 이랬다면 어땠을까.
만약에, 국회 본회의장을 채울 의원 150명이 모이지 못했더라면? 특히, 우원식 국회의장이 한 발 늦게라도 본회의장에 도착하지 못했다면? 회의를 소집할 권한을 가진 국회의장은 계엄 해제를 선언할 유일한 사람이었다. 추미애 의원은 하남에서부터 서울까지의 물리적 거리 때문에 계엄 해제 의결에 참여하지 못했다. 만약 이번 국회의장이 하남에 거주하는 추미애 의원이었다면?
만약에, 계엄군이 30분만 더 빨리 도착했더라면? 그날 밤 계엄군의 헬기는 눈발로 인해 지연되었고, 계엄군이 국회 진입을 시도하던 시점은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을 향해 질주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만약 계엄군이 조금 더 일찍 도착했다면 국회의원들은 헌법기관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헌병대에 의해 체포되었을 것이다. 체포된 의원들은 사라진 국회와 함께 “반국가세력”이라는 죄목으로 G1 벙커에 갇혀 어떻게 스러져갔을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다.
만약에,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가지 않았더라면? 그날 밤, 국회 담장을 넘어 계엄군 장갑차를 막아선 시민들의 저항은 군부의 폭주를 저지한 결정적 힘이었다. 만약 이재명 대표가 유튜브를 켜지 않았다면? 그래서 시민들에게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날 군병력을 막아선 대부분의 시민들이 무기력하게 집에 머물렀다면? 계엄군은 거침없이 국회를 장악했을 것이고, 그곳에 도착한 의원들은 이미 무장 군인들에게 제압당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였던 국회는 그 순간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다.
만약에, 국회의원 1명이 부족했더라면? 계엄 해제 결의를 위한 정족수는 150명이었다. 그날 밤 국회의사당 안에는 190명의 의원이 모였다. 그러나 단 149명이었다면? 예산안 처리를 위해 대부분 수도권에 머물렀던 의원들 덕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만약 단 한 명의 의원이 지방에 내려가 있었다면? 단 한 명의 의원이 겁에 질려 도망쳤다면? 민주주의는 단 한 명의 부재로도 무너질 수 있었다.
국회 계엄 해제 표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계엄령은 무기한 유지되었을 것이다. 계엄군이 여의도 전체를 봉쇄하고, 인터넷과 방송국을 전부 장악했을 것이다. 언론사 사옥이 불타고, 기자들은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을 것이다. 그날 밤 카톡과 SNS에 본 쿠데타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글을 글을 올린 시민들은 비밀 요원들에게 연행되었을 것이다. SNS 검열, 인터넷 차단, 언론 통제가 시행되며, 오직 계엄사령부의 방송만이 전파를 탔을 것이다. 모든 야당 의원과 시민 활동가들은 군사법정에서 말 그대로 즉결 '처단'되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단 한순간도 당연하지 않다.
당연한 일상은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게 없다.
역사란 참 기묘하고 운명적으로 웅장한 것이다. 이 바닥 없는 만약을 통과하며 대한민국은 불과 몇 분의 차이로 40년 전, 어쩌면 그 이상의 과거로 회귀할 뻔한 찰나의 순간을 면했다. 그럼에도 불안과 무력감을 끌어안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수많은 시민들이 꾸역꾸역 삼켜야 했던 그날 밤의 무게는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다.
정말로 가정이지만, 이후 2주간 드러난 여러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해 본다면, 만약 미군이 개입해 계엄군과 충돌했고,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까지 가세했다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수도권에만 3천만 명이 밀집해 있는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의 광기와 이에 동조한 소수의 부역자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일상과 생명이 담보될 뻔했는지는 상상조차 허용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다. 이런 끔찍한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역사가 부과한 또 한 번의 막대한 빚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밤의 비극을 막기 위해 희생과 결단을 감수했던 이들에게 또 한 번 큰 빚을 졌다.
내가 정치인도 아닌데, 라는 말
우리가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여길 때, 그것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실패를 반국가세력의 음모로 치부하며 권력을 남용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단순히 "좋은 시스템"으로 여기며 무기력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 결과, 헌법과 기본권이 침탈당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민주주의는 단 한순간도 가만히 앉아서 얻어진 적이 없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확대하기 위해 끝없이 싸워야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기술이 발전하고 문화가 고도화될수록 민주주의는 점차 "당연한 것"치부되고, 정치적 무관심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정치적 무관심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다. 독일의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를 "정치적 무지로 인해 죄 없는 사람들이 고통받고, 부패한 정치가들이 권력을 잡는" 상황으로 설명하며, 정치적 무관심을 가장 경멸해야 할 태도로 꼽았다. 이탈리아의 급진적인 정치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무관심은 역사의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라며, 정치적 무관심이 지배층이 권력을 유지하게 만드는 도구라고 지적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정치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 자체가 가장 정치적인 선언이다. 현상 유지에 동의하며 기존 권력 구조를 묵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링크드인에서 우연히 본 우리나라 최고 기업 커리어 타이틀을 달고 있는 어떤 사람의 댓글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중립을 넘어서 정치적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불편하다. 그러면서 그런 글이 정치적이지 않다고 하는데 그래서 더욱 불편하다."라고. 정말 이상한 말이다. 민주주의가 없었다면 당신의 그 자랑스러운 커리어가 멀쩡할 수 있었을까? 민주주의가 없다면 우리가 자격과 능력에 따라 경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까? 그리고 민주주의가 없다면, 모든 권리가 사라진 상태에서 당신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조차 남아 있을까? 트로트 가수 임영웅은 "내가 정치인인가요? 목소리를 왜 내요?"라며, 자신은 정치와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임영웅 씨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이 지금 누리는 팬들의 지지와 사랑,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활동의 자유는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한나 아렌트는 정치적 참여를 거부하는 것은 개인적 자유와 권리의 소멸로 이어진다고 경고하며, "정치적 무관심은 공적 삶의 상실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또한, 루마니아 태생의 인권 운동가 엘리 비젤은 "중립은 가해자에게만 이롭다"고 말하며, 부당한 상황에서 침묵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억압자를 돕는 행위임을 강조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라고 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주교였던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는 "불의의 상황에서 중립은 억압자의 편에 서는 것" 이라고 말했다. 이는 예술이나 글쓰기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행동에도 적용된다.
어떤 것이 정치적이지 않은가? 일상 속의 작은 결정조차도 사회적, 경제적 권력 구조와 맞닿아 있다.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근로 조건과 기업 문화의 개선을 요구하는 정치적 행위다.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도 개인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사회적 불평등과 정의를 둘러싼 정치적 입장을 드러낸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들이 공정한 승진 기회를 요구하는 것도 젠더 평등을 위한 정치적 행위다. 이처럼 우리의 삶을 사소한 일상의 맥락에서 많은 선택과 목소리는 태생적으로 이미 정치적이다.
다시 한 번, "나는 정치적이지 않은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야 말로 사실상 가장 정치적인 사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참사 당시 노란 리본 배지를 달고 "인간적 고통 앞에 정치적 중립은 없다"고 단호히 선언했다. 그 당시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저항하며 촛불을 들었던 10대 학생들이 이제는 20대, 30대가 되어 다시 거리로 나왔다.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면 여의도에서는 응원봉을 들었다. 침묵하는 다수는 그저 역사의 변두리로 밀려날 뿐이다. 우리가 침묵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지켜낸 것 그리고 지켜야 할 것
2024년 12월 14일, 대한민국 국회는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찬성 204표로 가결했다. 11일간의 긴박했던 싸움 끝에 국회 앞에 모인 200만 시민의 함성과 함께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희망은 힘이 셉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탄핵 가결을 선포하고 들려준 문장이다. 이 문장은 추운 겨울날 역사의 광장에 나온 200만 시민들의 발걸음과 함성을 완벽히 요약하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유시민 작가가 그의 책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에서 자필로 남긴 문장이기도 하다. 교보문고에서 그의 책을 훑어보며 이 문장을 만났었다. 참 뭉클한 문장이다. 우원식 의장이 산회를 선언하며 이 문장을 발음했을 때 그제서야 승리를 실감하며 감격이 밀려왔다.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낸 이 날은 대통령을 탄핵한 사건을 넘어서,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준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6주가 걸렸고,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은 2주가 걸렸다. 속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탄핵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시민들의 끊임없는 참여와 연대가 만든 결과니까. 그러나 동시에 이 과정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다시금 상기시킨 일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공정함을 요구하는 순간마다, 불의를 마주하며 침묵 대신 목소리를 내는 그 작은 선택들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택들을 통해, 주권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한 가지 아이러니가 여전히 앞에 놓여 있다. 우리는 박근혜도 탄핵시켰고, 윤석열도 탄핵시켰다. 그런데 탄핵에 반대표를 던진 85명의 의원들이 존재한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이다. 돌이켜보면 윤석열도 국민의 선택으로 당선된 인물이다. 국민의 절반이 그를 지지했다. 과거형이지만, 그랬다. 국민의 절반은 여전히 박근혜와 윤석열을 뽑은 사람들이다.
이는 민주주의가 가진 본질적인 딜레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목소리를 허용한다. 그것은 때로 우리를 분열시키고, 불완전하게 보이게도 만든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가치는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대화를 통해 길을 찾고, 결국 공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더 나은 일상과 공정한 사회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켜낸 것은 “주권자가 바로 우리”라는 사실이다.
나는 개발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고, 직장인으로서 회사도 다니고 있다. 그래서 커리어를 고민하고 어떤 회사를 가야 할지, 대기업이 좋은지 스타트업이 좋은지, 그런 것들을 고민한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직업을 갖든 간에 그보다 먼저 나는 민주 시민이다. 개발자로서 소프트웨어를 다루고 매일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지만, 민주 시민으로서의 나는 더 큰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 책임과 의무가 있다. 마치 과거에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지게 되었듯이, 정의, 공정, 평화와 같은 민주적 가치들을 지켜내고 상향 평준화시켜 물려주어야 한다. 이 일은 보수와 진보로 분류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니까. 그리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니까. 그 권력을 견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2024년 12월 14일은 끝이 아니다. 광장에 나온 많은 시민들이 이야기하듯, 이제 시작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단 한 번의 승리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계속 지켜내고 매일의 선택과 행동 속에서 증명해야 하는 가치이다. “죽은 자가 산 자를 돕는다”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과거의 희생이 오늘의 정의와 연결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희망은 힘이 셉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희망의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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