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는 시점에 돈을 벌고 싶어졌다.
이전까지 나는 낭만에 살고 낭만에 죽던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군 생활 하면서 전역하고 하고자 한 일이 (실제로 반정도 이루기도 했는데) 제주도 내려가서 자쿠지 설치하고 강아지와 놀고 먹는 거였다. 당시 가진 재산이라고는 200만원 + 중고 차 비용 정도였는데 나는 내 재산과 상관 없이 전역하면 매일 같이 그렇게 하고 있겠노라고 그 장면을 서스럼 없이 상상하곤 했다. 그러니까 그걸 바라기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N 중에서도 극악 N인데, 그냥 현실 자체가 개념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대학생 때는 더 심했다. 주변 사람들은 취업 준비를 위해 아득바득 복수 전공이니 교직이수니 스펙이니 하는 시점에 나는 여행을 다녔다. 당시 내가 막연히 가졌던 생각은, 지금 전공 공부가 재밌으니까 대학원을 가야겠다(갈 수 있으면), 아니면 어디 해외 공동체 같은 데 가서 살아야겠다, 같은 막연한 상상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그런 삶을 살았는데 서른이 되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활고나 용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큰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현실감이라는 게 그 즈음 내게 주입이 되었던 것 같다. 시작은 카페 사업부터 였을 것이다. 꽤나 낭만적으로 카페, 커피, 책, 출판 그런 사업을 했다. 그때 돈이라는 게 필요한 거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했다. 그게 내가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의 시발점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촉발점은 따로 있었다.
키우던 강아지가 아팠는데 한 달간 입원하고 수술하고 하면서 몇 백 정도가 들었다. 그게 좀 이야기하면 긴데, 어쨌든 돈 몇 푼 때문에 강아지가 아프게 됐고 그 돈을 충당하기 어려운 나 자신을 발견했고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것을 누리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시골로 들어갔다. 강원도의 산골이었는데 말 그대로 시골이었다. 20평 정도 되는 땅 냄새가 나는 그런 주택에서 강아지와 둘이 살았다. 오아시스에서 먹을 걸 시켰는데 오늘 시키면 모레 정도에 왔다. 어쨌든 배달은 되니까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은 없는 그런 곳이었다.
왜 시골로 갔냐면, 오래 생각을 해본 결론이 내가 원하는 만큼 돈을 벌려면 코인이나 주식 밖에는 답이 없을 것 같았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코인이랑 주식은 인터넷과 컴퓨터만 있으면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려고 그런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목표는 30억이었다.
코인을 좀 했다고 하면 다들 묻는 질문이 그래서 많이 벌었느냐이다. 나는 많이 벌기도 했는데 많이 잃기도 했다라고 답을 한다. 그러면 사람에 따라 다른데 이런 질문도 많이 받는다. 그래도 잃지는 않았지? 나 같은 경우는 애초에 시작한 돈이 천만원이 되지 않았다. 그냥 그 나이 먹고 진짜 그렇게 돈이 없었다. 그래서 잃을 래야 잃을 돈도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따지면 대성하긴 한 것 같다. 애초에 너무 없었으니까. 30억이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그 정도는 있어야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10억 집짓고, 10억 넣어놓고 월 500 배당 받고, 나머지 10억으로 소소하게 단타나 치면서 하루에 100만원 정도만 버는 삶.
결론적으로는 목표에 한참 못미쳤지만 어느 정도 돈이 모이니까 그냥 저냥 괜찮은 것 같았다. 돈이 많으면 안정감 같은 게 생기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이 나오는 게 좋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런데 시골에 있으면서 황금같은 30대 초반, 그러니까 내 또래 애들이 커리어에 날개를 달기 시작하는 나이대, 대리, 과장, 팀장 진급해서 천 단위로 연봉을 올릴 때, 나는 직장 경험 1도 없이 그냥 시골 백수 생활을 했다. 그런 시골 생활이 성향적으로 나에게는 잘 맞기도 했는데 한 2년 즈음 되니까 스물스물 갈증의 유형이 조금 바뀌어갔다. 처음 산골짝에 들어갈 때 내가 미쳐있었던 것은 "돈"이었다. 오로지 어떻게든 돈을 얼마를 벌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코인 트레이더"라고 하는 건 너무 궁색 없어 보였다. 그래서 그냥 "투자자" 정도로 이야기했는데 그건 일종의 거짓말이기도 했고 그냥 누가봐도 거짓말 같아서 더 없어 보였다. 그래서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워런 버핏의 그 말을 만났다.
연례 행사에서 인플레이션 시대 최고 투자법이 무엇이냐는 소녀의 질문에 대한 워런 버핏의 답변이었다.
"어느 분야든지 최고가 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투자일 것이라고.
나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았다. 정말 큰 충격이었다. 그 동안 오로지 "돈", "부자", "몇 억" 이런 생각만 하던 내 뇌리를 진짜 고문하는 것 같은 말이었다. 당시 내가 코인으로 하던 매매는 순전히 기술적 분석에 기반한 매매였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트레이딩. 차트 보면서 샀다 팔았다 하는 이 일로 전문성을 키울 수 있을까를 자문했다. 워런 버핏의 그 말은 나를 돈을 벌어야겠다는 집념에 미쳐있던 사람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이끌었다.
물론 차트 트레이딩으로도 전문성을 키울 수 있었다. 당시 내가 해결하고 싶던 문제 중 하나는 어떤 매매법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고 발전시켜서 시장에서 반드시 수익률을 내는 강력한 전략을 만들고 싶었었다. 2년 동안 매매하면서 파이썬을 배워서 트레이딩 하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이른바 손매매의 한계를 느껴 자동화된 매매 전략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과 손을 들여서 트레이딩을 할 때는 먹히는 어떤 전략, 즉 이론적으로 괜찮은 매매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이것을 파이썬을 이용한 프로그래밍으로 실현하는 데에 애를 먹고 있었다. 지금처럼 이걸 계속하면 내가 전문가가 될까, 를 자문했다. 답은 아니었다. 생각을 해 보니 두 가지가 부족했다. 첫 번째는 기술적 분석에 있어서의 보다 폭넓은 지식 + 퀀트적인 지식이었고 두 번째는 파이썬 코딩 능력이었다.
그래서 금융 대학원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한 번 그쪽으로 눈이 트이기 시작하니 다른 옵션들이 보였다. 그 중에 하나는 인공지능 대학원에 가는 거였다. 왜냐하면 내가 풀고 싶은 그 시장을 이기는 알고리즘이 사실은 인공지능을 사용해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인공지능을 배우려고 하니 수학적인 베이스가 너무 없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또 가만히 보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그게 맞나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어느 시점부터는 매매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서 (스트레스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프로그래밍에 더 재미를 느끼고 있던 나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 마침 동생의 일을 도와서 간단한 자동화 프로그램을 몇 개 만들 기회가 있었다. 그게 터닝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해보니까 프로그래밍을 하는 게 차트 보면서 매매하는 거보다 재밌었다.
그렇게 하여 마침내 내가 전문성으로 선택할만한 분야가 개발 쪽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그 시점이 2022년 여름, 가을이다. 가장 먼저 한 일은 sqld를 공부한 일이었다. 찾아보니깐 비전공자가 개발자가 되려면 꼭 필요한 자격증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게 sqld랑 정보처리기사라는 것이었다. 그 시점에 해볼만한 가장 빠른 시험이 sqld여서 sqld를 공부했고 취득했다.
그리고 또 찾아 보니 프로젝트를 해야한다고 했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혼자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학원을 알아보았다.
이 뒷 이야기는 아래 글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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